[취재수첩] 과학영재가 성형외과 의사되는 나라

입력 2023-01-26 17:48   수정 2023-01-27 00:07

서울대에서 지난해 341명이 자퇴했다. 3년 연속 사상 최다다. 국내 최고 대학에 어렵게 합격하고도 학생증을 반납하는 학생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자퇴 사유는 대부분 ‘의대 진학’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서울대 자연계열 학과 합격선이 의대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젠 지방 의대의 커트라인이 웬만한 서울대 학과를 넘어섰다. 의대뿐 아니라 치의대, 한의학과, 약학과도 ‘서울대급’이 됐다.

이공계 인재를 키울 목적으로 설립된 과학고도 의대 열풍을 비껴가지 못했다. 경기과학고는 ‘의학 계열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서약한 학생들만 입학시키는데도 올해 대학 지원자 중 약 20%가 의대를 썼다. 장학금과 교육비를 환수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소용없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재학생 만점자 2명도 모두 의대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로 전향한 영재들은 전공의 선택 과정에서 다시 소득 서열에 따라 성형외과, 피부과 등으로 몰린다. 정작 인력이 부족한 소아과·산부인과는 매년 미달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개인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수재들의 의대 진학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2020년 기준 국내 의사 평균 연봉은 2억3070만원으로 대기업 직원 평균(7008만원)의 세 배를 넘는다. 50대면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대기업 직원과 달리 의사는 70대까지 충분히 일할 수 있다. 많이 벌고 오래 일할 수 있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문제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등 국가 전체의 미래가 걸려 있는 산업에서 인재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사실상 국정과제 1호로 내놓고 총력전을 선포했지만, 의대 쏠림 현상이 계속된다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작년 서울대 자퇴생 중 81%가 이공계였다.

의대 쏠림을 막으려면 국가와 기업이 나서 학생·학부모들이 이공계 분야가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만들어줘야 한다. 정부는 미래첨단 산업과 관련 학과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기업은 이공계열 인재가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규제를 타파해 청년창업과 벤처투자를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1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인사이트가 절실하다. 과학 영재 대다수가 돈 되는 성형외과로 몰려가는 나라에서 미래를 기대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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